남도 음식 문화를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식재료가 바로 홍어(Skate)입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잔칫날 동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어김없이 홍어가 올라왔습니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홍어가 없으면 잔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홍어는 경조사의 진정한 주인공이었죠. 어린 시절에는 그 특유의 톡 쏘는 향과 알싸함에 적응하지 못해 멀리하곤 했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 다시 접한 홍어는 묘하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홍어삼합에 탁주 한 잔을 곁들이는 맛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참맛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홍어는 고요하고 조용한 혼밥 자리보다는 여럿이 모여 막걸리를 잔에 채우고 시끌벅적하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선조들의 삶이 담긴 조선 시대 문헌..
학창시절 학교앞 분식집에서 먹던 당면이 가득찬 순대는 떡볶기와 더불어 허기를 달래주던 추억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병천순대를 처음 먹었을 때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습니다. 순대가 단순한 분식이 아니라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고, 이 음식의 역사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오래되고 완벽한 음식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순대의 역사, 전장에서 포장마차까지 순대가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너무 드라마틱한 설정 아닌가 싶었거든요. 이 주장은 13세기 몽골 기병이 이동 중 취식할 목적으로 창자 속에 피와 살코기를 채워 말 등에 달고 다녔다는 내용인데, 그 음식의 몽골 명칭이 수태였으며 이것이 순대라는 이름의 어원이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주장에 회의적인 시각도..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기사식당에서 우연히 먹은 제육볶음 한 그릇이 제 인생 음식 목록을 바꿔놨습니다. 냄비째 올라온 매콤한 양념의 돼지고기, 아삭한 채소, 그 조합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 후로는 제육볶음을 먹기 위해 기사식당을 찾아 다닌 적도 많았습니다. 한국 남성들이 제육볶음을 유독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왜 이 음식이 이렇게 오래 사랑받아 왔는지 직접 파고들어 봤습니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육볶음의 뿌리 제육볶음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됐다는 건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1670년경 안동 장씨가 집필한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야조육(野猪肉), 즉 멧돼지 고기를 활용한 조리법이 등장합니다. 음식디미방이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글 조리서로,..
불고기가 궁중 음식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제사상에나 올라오는 너비아니를 보면서 '저게 불고기의 조상이라고?' 싶었던 게 솔직한 첫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광양까지 직접 내려가서 석쇠 위에 올라간 불고기 한 점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2,000년의 역사가 한꺼번에 연결되었습니다. 맥적에서 너비아니까지, 불고기의 뿌리 불고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 시대의 맥적(貊炙)이라는 음식에 닿습니다. 맥적이란 고구려를 세운 맥족(貊族)이 즐겨 먹던 꼬챙이 구이로, 오늘날의 불고기와 결정적으로 같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굽기 전에 먼저 장(醬)에 재워두는 선 양념 후 조리 방식입니다. 당시 주변 나라들이 고기를 구운 뒤 소스를 찍어 먹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질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고려 시..
솔직히 저는 잡채가 원래 면 요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중국집에서 당면 없이 야채와 고기만 나오는 잡채를 받아 들고 황당했던 그날, 오히려 제가 잡채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간장 베이스의 달콤짭짤한 맛과 탱글탱글한 당면 식감으로 맵찔이인 제게 최고의 음식이었던 잡채, 그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간신의 뇌물에서 시작된 잡채의 역사 잡채(雜菜)란 한자 그대로 풀면 '여러 채소를 섞은 요리'를 뜻합니다. 이름만 보면 소박한 채소 요리처럼 느껴지지만, 탄생 배경은 꽤 정치적입니다. 조선 15대 왕 광해군 시절,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이라는 인물이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집에서 만든 진귀한 음식을 궁궐로 보냈는데, 그중 왕의 입맛을 가장 사로잡은 것이 바로 잡채..
갈비찜이 원래 산 사람을 위한 음식이 아니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꽤 놀랐습니다. 명절 밥상에서 빠지면 서운한 그 음식이, 수백 년 전에는 조상께 먼저 올리는 음식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갈비찜의 달콤짭짤한 맛 뒤에는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우금령과 제사, 갈비찜이 탄생한 배경 갈비찜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우금령(牛禁令)부터 짚어야 합니다. 우금령이란 조선 시대에 국가가 소의 도축을 금지한 명령으로, 쉽게 말해 "소를 함부로 잡지 말라"는 법령입니다. 소는 논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농경 사회의 핵심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소 한 마리를 잡는 행위는 그 집안의 노동력 하나를 통째로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뭄이나 흉년이 들면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