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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순대가 당면으로 만드는 음식인 줄 알았습니다. 학창 시절 분식집에서 먹던 그 순대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병천순대를 처음 먹었을 때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습니다. 순대가 단순한 분식이 아니라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고, 이 음식의 역사를 찾아보다가 더 큰 놀라움을 만났습니다.
순대의 역사, 전장에서 포장마차까지
순대가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너무 드라마틱한 설정 아닌가 싶었거든요. 이 주장은 13세기 몽골 기병이 이동 중 취식할 목적으로 창자 속에 피와 살코기를 채워 말 등에 달고 다녔다는 내용인데, 그 음식의 몽골 명칭이 수태였으며 이것이 순대라는 이름의 어원이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주장에 회의적인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식품사학(食品史學), 즉 음식의 기원과 전파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에서는 순대라는 명칭이 몽골어 수태가 아니라 만주·통구스어계 어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더 유력하게 다뤄집니다. 어원 하나로 기원을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거죠. 저도 이 부분은 한 가지 설로만 받아들이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다만 원간섭기(元干涉期), 쉽게 말해 고려가 몽골 제국의 영향권 아래 놓였던 13~14세기 약 100년의 시간이 한반도 식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합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설렁탕, 만두, 그리고 순대와 유사한 내장 요리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맥락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음식의 기원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줄기가 얽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 순대의 위치는 더 복잡해집니다. 궁중 연회 기록에 창자에 속재료를 채워 익힌 음식이 등장하는 동시에, 저자거리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도축(屠畜)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계층이 사회적으로 낮게 여겨지던 시절, 그들이 만드는 순대가 왕의 상에도 오른다는 건 조선 신분제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음식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누가 만들고 누가 먹느냐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달라집니다. 순대는 그 복잡한 위치를 수백 년 동안 한 몸에 안고 있었던 셈입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내장에 재료를 채워 익히는 방식은 여러 문화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순대와 만드는 원리가 거의 같은 음식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코틀랜드의 해기스(Haggis): 양의 위장에 내장과 오트밀을 채워 익힌 음식으로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전통 요리입니다.
- 프랑스의 부댕 누아르(Boudin Noir): 돼지 피와 지방을 창자에 채운 소시지로 제조 방식이 선지 순대와 매우 유사합니다.
- 독일의 블루트부르스트(Blutwurst): 돼지 피를 주재료로 한 혈액 소시지로 중부 유럽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 영국의 블랙 푸딩(Black Pudding): 선지와 오트밀, 지방을 섞어 만든 영국식 소시지입니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서민 음식이라는 겁니다. 버려지는 내장을 활용해 배를 채운 가난한 사람들의 지혜에서 출발했고, 지금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이 됐습니다. 순대도 정확히 그 궤적을 따릅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 음식 문화 관련 자료에서도 순대는 잔치 음식이자 서민 음식으로 이중적 위치를 가진 음식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민속박물관).
당면순대, 분식집의 그 순대가 생긴 이유
제가 학창 시절 먹던 순대 속에는 거의 당면만 들어 있었습니다. 썰어보면 투명하고 쫄깃한 면 덩어리가 대부분이고 선지는 조금, 채소는 거의 없는 그런 순대였습니다. 그게 원래 순대의 모습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당면 자체가 역사적으로 상당히 늦게 순대에 들어온 재료였습니다.
당면(唐麵)이란 녹두나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투명한 면류를 뜻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고, 한반도에 대량으로 유입된 건 근대, 정확히는 일제강점기 이후입니다. 당면 제조 공장이 들어서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가격도 낮아졌습니다. 저렴하고 양도 늘어나는 데다 식감까지 좋으니, 순대 속을 채우는 재료로 당면이 들어가는 건 장사하는 입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당면 가득한 분식집 순대는 역사적으로는 꽤 최근의 형태입니다. 조선 시대 순대의 주재료는 두부, 숙주, 찹쌀, 선지였고 이는 지금의 아바이순대나 함경도식 순대에 더 가까운 형태입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전통 발효·가공식품 관련 연구에서도 한국 순대의 속재료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졌으며 당면 중심 순대는 20세기 이후에 대중화된 형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연구원).
그런데 저는 당면순대를 낮게 보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당면순대는 그 자체로 완성된 요리라기보다 다른 음식의 재료로 쓰일 때 진가를 발휘하는 식재료에 가깝다고 봅니다. 실제로 순대볶음을 먹어보면 당면이 양념을 잘 흡수하면서 떡볶이 소스나 매운 볶음 양념과 기막히게 어울립니다. 분식집 순대를 당면순대라고 무시하기 쉬운데, 저는 이 순대볶음에서 당면순대의 존재 이유를 봤습니다. 요리의 재료로 최적화된 식재료, 그게 당면순대라는 생각입니다.

병천순대와 아바이순대, 순대가 요리가 되는 순간
성인이 되어 처음 병천순대를 먹었을 때 당황했습니다. 썰었을 때 단면이 꽉 차 있었고 선지와 고기 비율이 높았으며, 따로 소스가 없어도 그 자체로 완성된 맛이었습니다. 분식집 순대처럼 떡볶이 양념에 비벼 먹거나 튀겨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썰어서 소금 조금 찍어 먹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게 원래 순대구나 싶었습니다.
병천순대는 충청남도 천안 병천면을 대표하는 지역 순대입니다. 창자 세척 방식과 속재료 배합이 다른 지역과 달라 잡내가 적고 깔끔한 맛이 특징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병천면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데는 이 순대의 역할이 컸습니다. 순대 하나로 지역 정체성을 만들어 낸 셈입니다.
아바이순대는 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함경도식 순대인 아바이순대가 속초 청호동에 뿌리를 내린 건 한국전쟁 때문입니다. 피란민(避難民), 즉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낯선 땅에서 고향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바이순대입니다. 아바이는 함경도 사투리로 나이 든 어른, 아버지를 뜻합니다. 돼지 대장에 찹쌀과 선지, 돼지고기를 넣고 쪄낸 이 순대는 일반 순대보다 굵고 묵직합니다. 썰어보면 속이 꽉 차 있고 한 조각만 먹어도 든든합니다.
순대국밥에서도 이 차이는 뚜렷하게 납니다. 제 경험상 당면순대는 국밥 안에서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국물에 오래 담겨 있으면 당면이 불어서 죽처럼 변하거든요. 반면 병천순대나 아바이순대는 진한 육수와 함께 있어도 형태를 유지하면서 국물 맛을 끌어올립니다. 순대국밥이라는 음식 자체의 맛을 한 단계 올려주는 차이가 있습니다. 순대를 고를 때 어디에 쓸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순대가 다른 건 단순히 레시피 차이가 아닙니다. 기후, 구할 수 있는 재료,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순대라는 음식 속에 축적된 결과입니다. 강원도 오징어순대가 그렇고, 배암순대가 그렇고, 개성순대가 그렇습니다. 이 순대들을 하나하나 먹어보는 것 자체가 한반도 식문화 지도를 직접 읽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장마차에서 천 원짜리 순대 한 줄을 사 먹을 때, 그 안에 700년의 역사가 녹아 있다는 걸 알고 먹으면 맛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순대를 단순히 저렴한 분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