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을 실컷 먹고 나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게 있습니다. 달콤한 식혜 한 그릇이냐, 알싸한 수정과 한 잔이냐. 저는 이 고민을 어릴 때부터 해왔는데, 사실 이 두 음료가 그냥 단 음료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기름진 음식 뒤에 뭘 마셔야 속이 편한지 고민해 본 적 있으시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겁니다.식혜의 발효 원리, 할머니 아랫목에서 배웠습니다 저에게 식혜는 그냥 음료가 아닙니다. 어릴 때 할머니가 꼬두밥을 안치던 날이면 괜히 부엌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껍질째 말린 보리 싹처럼 생긴 것들을 밥에 섞는 걸 보면서 '저게 어떻게 단맛을 만들까' 싶었거든요. 그게 바로 엿기름이었고, 나중에서야 그 안에 담긴 원리를 알게 됐습니다. 식혜의 핵심은 엿기름에 들..
저한테 명란젓은 밥도둑이 아니라 밥강도입니다. 입맛이 뚝 떨어진 날 밥을 물에 말아 명란젓 하나 올려 먹으면 어느새 그릇이 비어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먹어왔는데, 알고 보니 젓갈이 발효 과정에서 혈압에 도움을 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짜서 건강에 안 좋다고만 생각했던 음식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수천 년 밥상 위에 자리한 발효식품 젓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까지 닿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음식 목록에 젓갈을 뜻하는 '해(醢)'가 포함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왕실 혼례 상에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그 전성기가 열려 당시 요리 문헌에 기록된 젓갈 종류만 150가지가 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어릴 때 학교에서 "소금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고 배웠을 때, 저는 속으로 '그럼 간장을 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꽤 귀여운 발상이지만, 그 질문이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닿아 있다는 걸 이제야 압니다.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인류 문명 자체를 움직인 전략 자원이었습니다.왜 인간만 소금에 집착할까 — 염분과 땀의 관계 일반적으로 "짜게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말이 반쪽짜리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저는 무척 짜게 먹었고, 요즘은 훨씬 싱겁게 먹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입맛이 변했다고만 생각했는데, 따지고 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에어컨도 귀했고 바깥 활동도 많았으니 땀을 훨씬 많이 흘렸던 겁니다. 땀을 많이 흘리..
뷔페에 가면 저는 어김없이 샐러드부터 접시에 가득 담습니다. 그것도 두 접시. 드레싱 없이 채소만 먹는 건 토끼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라 시큼한 식초 드레싱은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매일 이렇게 즐겨 먹으면서도 식초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렇게 다양한 곳에 쓰이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시작이 꽤 뜻밖이었습니다.식초의 탄생배경, 상한 술에서 미식으로 식초는 처음부터 누군가 의도해서 만든 물질이 아닙니다. 영어로 비네거(vinegar), 프랑스어로는 뱅 에그리(vin aigre)인데, 직역하면 '시큼해진 와인'입니다. 즉, 식초의 출발점은 그냥 오래되어 상한 술이었습니다. 어느 날 와인을 꺼내 마시려는데 술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입안을 찌르는 신맛만 남아 있었다..
김치를 먹으면서 단 한 번도 '이건 그냥 절인 채소잖아'라고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사실 17세기 이전까지 김치는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채소절임이었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알고 나서 한동안 멍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빨갛고 매콤하고 깊은 김치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요.채소절임에서 시작된 4천 년의 역사 김치의 출발점을 따라가면 지금으로부터 약 4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와 인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냉장기술이 없던 시절,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보존성을 높이는 방식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선택한 해법이었습니다. 유럽의 피클, 중국의 저(菹), 그리고 한반도의 김치 조상 모두 같은 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여기서 삼투압 현상이란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수분이 이동하는 현상을..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간장 라벨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익숙한 브랜드, 익숙한 디자인을 집어 드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마트에서 같은 회사 제품인데 가격이 천 원 넘게 차이 나는 걸 보고 처음으로 뒷면을 꼼꼼히 들여다봤는데, 거기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식간장, 양조간장, 혼합간장의 차이와 총질소 수치가 맛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짚어봤습니다.라벨에 쓰인 간장의 종류, 실제로 뭐가 다른가 어릴 때 집에서 먹던 간장은 정말 짰습니다. 김 위에 밥 한 숟갈 올리고 그 위에 맑은 간장을 한두 방울만 떨어뜨려도 충분했을 정도였습니다. 그게 바로 한식간장, 흔히 조선간장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소금물에 띄워 몇 달을 숙성시킨 뒤 건져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