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저는 미역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국그릇에 미역이 잔뜩 담겨 나오면 미끈미끈한 느낌에 솔직히 내키지 않았고, 반면 김이나 파래, 매생이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후 우연히 들른 미역국 전문 식당에서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야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밥상에서 만나는 김·미역·다시마, 이 세 가지 해조류가 사실 과학적으로 꽤 복잡한 정체를 가진 생물이라는 것도 그 즈음부터 궁금해졌습니다.해조류 종류, 알고 보면 서로 다른 생물이었다 미역이 식물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당연히 그렇다고 답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뿌리처럼 생긴 부분이 있고, 줄기와 잎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광합성을 하니까요. 그런데 직접 찾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이야기가 복..
저는 소위 말하는 맵찔이입니다. 어릴 적 김치가 너무 매워서 물에 씻어 먹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덜 매운 고추 품종이 퍼지면서 이제는 불닭볶음면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즐겨 먹는 고추, 원래부터 우리 것이었을까요?고추 전래 경로,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르다 고추의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입니다. 기원전 7000년경 중미와 남미에서 재배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만큼 역사가 깊습니다. 이걸 유럽에 처음 가져온 사람이 바로 콜럼버스입니다. 그는 1492년 항해에서 후추를 찾다가 대신 고추를 발견했고, 스페인으로 들여온 뒤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됐습니다. 이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스코 다가마가 1497년 희망봉을 거쳐 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
주말농장에서 직접 키운 우리나라 고유품종의 쌀로 막걸리를 담그던 날, 처음으로 누룩이라는 것을 손에 쥐어봤습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막걸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누룩은 단순한 발효 재료가 아니라 술의 맛과 향을 통째로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지역 기후에 따라 형태도 달라지고, 잘못 만들면 술은커녕 식초도 못 만든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누룩이란 무엇인가, 발효 스타터의 역할 막걸리나 청주 같은 전통주를 만들 때 쌀이 주재료라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쌀은 과일과 달리 처음부터 당(糖)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쌀 속에는 전분(녹말)이 들어 있는데, 이 전분을 당으로 전환한 뒤에야 비로소 알코올 발효가 가능합니다. 바로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
겨울이 시작될 무렵, 집 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하게 퍼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할머니 댁 부엌에서 콩이 솥에 푹 끓던 그 냄새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냄새 하나하나가 전통 발효 과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메주를 빚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절구질과 미생물, 메주가 완성되기까지 메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콩 삶기입니다. 그냥 푹 삶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단백질 변성(protein denaturation)이 제대로 일어나야 합니다. 단백질 변성이란 열에 의해 콩 단백질의 분자 구조가 풀리는 현상으로,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이후 발효 단계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속도가 빨라집..
냉면이 여름 음식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냉면은 원래 겨울에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차가운 육수에 국수를 말아 먹는 방식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조리법입니다. 냉면의 기원부터 평양냉면, 막국수, 밀면의 차이까지, 먹을 때마다 궁금했던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냉면의 기원, 생각보다 역사가 짧다? 냉면을 수천 년 이어온 음식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연 그게 맞을까요? 저도 막연히 오래된 음식이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살펴보면 좀 다릅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냉면은 17세기 초, 조선 인조 시대 전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헌 기록으로는 인조 때 활동한 문인 장유(張維)의 시에서 처음 '냉면'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는 "젓가락 들..
명절이 되어서야 한과의 존재를 알아채는 분, 저도 그렇습니다. 어릴 적 제사상 앞에서 음복할 때 제가 제일 먼저 집어든 건 항상 약과였습니다. 달콤하고 기름진 그 맛이 좋았는데, 사실 그게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해 튀겨낸 음식인지는 몰랐습니다. 한과는 알고 보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지금 우리 식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천 년을 이어온 한과의 뿌리 한과의 역사는 약 1,700년 전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유사에는 김유신이 여인에게 과자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과자는 일반 과일이 아니라 '풀 초(草)' 자를 쓴 조과(造菓)입니다. 조과란 자연 과일을 대신해 곡물이나 꿀로 빚어 만든 인공 과자를 의미하며, 우리 한과의 시작점으로 학자들이 주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