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의 어릴 때 절구는 그냥 마당 한켠에 놓인 무거운 돌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무거운 돌 안에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절구와 공이는 단순한 조리도구가 아니라 수천 년 식문화를 이어온 생활 유산입니다. 마당 한켠의 돌덩어리, 그게 절구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할머니 댁 마당에는 절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린 제 눈에는 그냥 커다란 돌이었고, 오히려 장난감에 더 가까웠습니다. 오재미나 공을 멀리서 던져 절구 안에 넣는 게임을 혼자 하기도 했고, 작은 보물창고처럼 안에 뭔가를 숨겨두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도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절구의 역사를 따라가면 선사시대까지 거슬..
겨울이 시작될 무렵, 집 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하게 퍼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할머니 댁 부엌에서 콩이 솥에 푹 끓던 그 냄새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냄새 하나하나가 전통 발효 과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메주를 빚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절구질과 미생물, 메주가 완성되기까지 메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콩 삶기입니다. 그냥 푹 삶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단백질 변성(protein denaturation)이 제대로 일어나야 합니다. 단백질 변성이란 열에 의해 콩 단백질의 분자 구조가 풀리는 현상으로,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이후 발효 단계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속도가 빨라집..
한국인은 1년에 평균 2~3kg의 된장을 소비합니다. 된장찌개만 그런 게 아니라 나물 무침, 쌈장, 국물 요리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한식에 직간접으로 된장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 처마 밑에 매달린 메주를 보면서 저게 대체 뭔지 한참을 궁금해했는데, 그 메주 덩어리 하나가 천년 넘는 역사를 품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천년 발효 — 된장은 어떻게 한식의 뿌리가 되었나 된장의 역사는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삼국사기 신문왕 3년, 즉 683년 기록에 따르면 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 납채 품목에 쌀, 꿀, 기름과 함께 간장과 된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왕실 혼례 예물로 쓰일 만큼 된장의 위상이 높았다는 뜻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계층의 벽을 넘어 백성에게까지 퍼졌습니다.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