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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만들기 (바실러스균, 발효, 된장)

by 움치둠치 2026. 6. 29.

겨울이 시작될 무렵, 집 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하게 퍼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할머니 댁 부엌에서 콩이 솥에 푹 끓던 그 냄새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냄새 하나하나가 전통 발효 과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메주를 빚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절구질과 미생물, 메주가 완성되기까지

메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콩 삶기입니다. 그냥 푹 삶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단백질 변성(protein denaturation)이 제대로 일어나야 합니다. 단백질 변성이란 열에 의해 콩 단백질의 분자 구조가 풀리는 현상으로,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이후 발효 단계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단시간에 강하게 끓인 뒤 불을 낮추고 오래 뜸을 들이는 방식이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삶은 콩을 절구에 찧는 작업은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할머니를 도와드렸습니다. 박자에 맞춰 공이를 내리찍으면 할머니께서 퍼진 콩을 안으로 밀어넣고, 다시 제가 찧는 식이었습니다. 가장 조심한 건 할머니 손이었습니다. 절구질 박자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할머니 손 위치를 항상 확인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메주 덩어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 형태를 잡은 뒤 겉이 꾸덕꾸덕해질 때까지 먼저 말렸습니다.

겉을 충분히 건조시키는 이유는 유해 곰팡이의 초기 번식을 억제하기 위해서입니다. 겉면이 굳으면 그 이후에는 볏짚으로 엮어 처마 밑에 매달았는데, 이 볏짚에 핵심 발효균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입니다.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란 콩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강력한 효소를 지닌 호기성 세균으로, 발효된 콩 식품 특유의 감칠맛과 아미노산을 만들어내는 핵심 미생물입니다. 메주를 땅에서 높이 매다는 전통 방식은 지열과 수분의 영향을 차단해 이 균이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랜 경험이 경험적으로 발효 미생물학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메주에서 발효가 제대로 진행되면 메주 표면에는 곰팡이균사(mycelium)가, 내부에는 바실러스균이 집중적으로 자랍니다. 여기서 균사란 곰팡이가 뻗어나가는 실 모양의 구조물로, 메주 표면의 갈라진 틈을 따라 깊숙이 침투하며 발효를 돕습니다. 잘 뜬 메주는 단순히 발효된 콩이 아니라, 아미노산과 유익균이 농축된 영양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메주 발효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콩 단백질 변성이 충분히 이루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뜸을 들여 삶을 것
  • 겉면을 먼저 완전히 건조시켜 유해 곰팡이의 초기 증식을 막을 것
  • 볏짚으로 묶어 통풍이 잘 되는 높은 곳에 매달아 바실러스균의 정착을 도울 것
  • 25일에서 30일간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발효가 균일하게 진행되도록 할 것

된장의 5덕과 과학 사이, 어디쯤에서 볼 것인가

어릴 때 저는 메주가 못생긴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는 걸 듣고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제가 온갖 정성을 쏟아 빚은 메주는 제 눈에는 사랑스럽고 복스럽기만 했거든요. 사실 지금도 그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투박한 외형 속에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아 숨 쉬는 메주가 어떻게 못생긴 것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옛 선조들은 된장에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단심(다른 재료와 섞여도 제 맛을 잃지 않음), 항심(오래 두어도 변질되지 않음), 불심(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잡아줌), 선심(매운 맛을 부드럽게 해줌), 화심(어떤 음식과도 잘 어우러짐)이 그것입니다. 이걸 단순한 미신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 다섯 가지 성질은 사실 발효 식품의 화학적 특성을 경험에서 우러난 언어로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볏짚의 바실러스균만이 발효의 전부라고 이해하는 시각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발효 환경에 따라 유해균이 함께 증식할 수 있고, 기온이나 습도가 맞지 않으면 메주 전체가 망가지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메주 하나가 제대로 뜨려면 온도와 통풍, 습도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맞아야 했고, 그 중 하나라도 빗나가면 결과물이 달라졌습니다.

국내 전통식품에 대한 영양학적 연구에서도 된장은 단백질 소화흡수율이 높고 필수 아미노산 조성이 우수한 식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또한 청국장 10g에 바실러스균이 약 100억 마리 수준으로 함유되어 있다는 점은 장내 미생물 환경, 즉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와 연결됩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란 인체 내에 공존하는 미생물 생태계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면역과 소화 기능에 깊이 관여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발효 콩 식품에 대한 기능성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된장의 가치는 신비화보다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선조들의 경험이 현대 발효 과학과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더 의미 있습니다.

메주 한 덩어리를 빚는 데는 콩을 고르는 손길부터 절구질, 건조, 발효까지 꽤 긴 시간과 품이 들어갑니다. 할머니 곁에서 그 과정을 함께하면서 저도 모르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된장과 청국장이 단순히 건강에 좋다는 말보다, 그 안에 어떤 원리가 담겨 있는지를 조금 더 알고 먹으면 맛이 달라질 것입니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지혜를 이해하고 이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영양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lgjZfmrJ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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