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잡채가 원래 면 요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중국집에서 당면 없이 야채와 고기만 나오는 잡채를 받아 들고 황당했던 그날, 오히려 제가 잡채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간장 베이스의 달콤짭짤한 맛과 탱글탱글한 당면 식감으로 맵찔이인 제게 최고의 음식이었던 잡채, 그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간신의 뇌물에서 시작된 잡채의 역사 잡채(雜菜)란 한자 그대로 풀면 '여러 채소를 섞은 요리'를 뜻합니다. 이름만 보면 소박한 채소 요리처럼 느껴지지만, 탄생 배경은 꽤 정치적입니다. 조선 15대 왕 광해군 시절,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이라는 인물이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집에서 만든 진귀한 음식을 궁궐로 보냈는데, 그중 왕의 입맛을 가장 사로잡은 것이 바로 잡채..
맷돌은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래 수천 년을 이어온 압착식(壓搾式) 곡물 분쇄 도구입니다. 제가 어릴 때 직접 돌렸던 그 무거운 돌덩이가 사실은 현대 믹서기로도 재현하기 어려운 정교한 원리를 품고 있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석기시대처럼 살았던 어린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제 어린 시절 집 안에는 돌로 만든 도구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맷돌, 절구, 다듬이판까지. 지금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 시절에는 그게 너무 당연한 풍경이었습니다. 어떤 집이나 마당 한켠이나 부엌 한쪽에 크고 납작한 돌 두 짝이 놓여 있었으니까요. 그 중 절구(臼)와 맷돌은 어린 저도 직접 다룰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절구란 곡식이나 재료를 공이로 찧어 분쇄하는 도구로, 약재나 참깨처럼 소량을 가공할 때 주로 썼습니다...
점심 시간만 되면 도시락 검사가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이 뚜껑을 열어 보리알이나 콩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는 그 순간이 저는 늘 아찔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너무 가난했던 시절을 겪으셔서 보리밥을 죽도록 싫어하셨고, 그 덕에 저는 반 친구들 도시락에서 보리 몇 알을 빌려다 제 밥 위에 올려놓고서야 겨우 검사를 통과했습니다. 그때는 그냥 창피한 기억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장면 안에 한국인이 밥과 맺어온 수천 년의 관계가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벼농사 기원,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습니다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시점은 일반적으로 청동기 시대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들은 그 시계를 상당히 앞으로 당기고 있습니다.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가 대표적입니다. 탄화된 이 볍씨의 소경(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