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작은 항아리에 직접 담근 매실청을 2년 가까이 두고 먹었습니다. 다 쓰고 나서 항아리를 씻어 김치를 담으려 했는데, 씻고 또 씻어도 매실청이 벽 안쪽에서 계속 배어 나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옹기가 숨을 쉰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추상에서 실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장독대는 그냥 오래된 저장 용기가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꿰뚫은 발효 공간이었습니다. 옹기 통기성 — "숨 쉬는 그릇"의 정체 항아리 벽에서 매실청이 배어 나오던 그 장면을 저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세척을 잘못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깨끗이 닦은 뒤 한 시간쯤 지나 다시 보면 어느새 또 촉촉하게 번져 있었습니다. 결국 그 항아리는 매실청 전용으로 남겨두기로 했고, 덕분에 옹기의 통기성을 몸으로 이해하..
주말농장에서 직접 키운 우리나라 고유품종의 쌀로 막걸리를 담그던 날, 처음으로 누룩이라는 것을 손에 쥐어봤습니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막걸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누룩은 단순한 발효 재료가 아니라 술의 맛과 향을 통째로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지역 기후에 따라 형태도 달라지고, 잘못 만들면 술은커녕 식초도 못 만든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누룩이란 무엇인가, 발효 스타터의 역할 막걸리나 청주 같은 전통주를 만들 때 쌀이 주재료라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쌀은 과일과 달리 처음부터 당(糖)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쌀 속에는 전분(녹말)이 들어 있는데, 이 전분을 당으로 전환한 뒤에야 비로소 알코올 발효가 가능합니다. 바로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누룩입니다. ..
겨울이 시작될 무렵, 집 안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하게 퍼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할머니 댁 부엌에서 콩이 솥에 푹 끓던 그 냄새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냄새 하나하나가 전통 발효 과학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메주를 빚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단순한 추억 이상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절구질과 미생물, 메주가 완성되기까지 메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콩 삶기입니다. 그냥 푹 삶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단백질 변성(protein denaturation)이 제대로 일어나야 합니다. 단백질 변성이란 열에 의해 콩 단백질의 분자 구조가 풀리는 현상으로, 이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이후 발효 단계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속도가 빨라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