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이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단맛을 냈을까요. 정답은 꿀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당연히 꿀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조청을 만들어보고 나서야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쌀과 엿기름만으로 꿀 못지않은 깊은 단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 그게 조청이었습니다.설탕 이전, 우리 밥상의 진짜 감미료 조청(造淸)이라는 한자를 풀면 '인공적으로 만든 꿀'이라는 뜻입니다. 자연에서 얻는 진짜 꿀을 '청'이라 불렀으니, 사람 손으로 만든 꿀이라는 뜻에서 조청이라 부른 것입니다. 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늘 귀한 것이었습니다. 아플 때나 손님 접대 때 꺼내는 특별한 것이었지, 일상의 감미료는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를 조청이 대신 채웠습니다. 오늘날 설탕이 하는 역할을, 조선시대에는 조청이 고스란히..
저한테 명란젓은 밥도둑이 아니라 밥강도입니다. 입맛이 뚝 떨어진 날 밥을 물에 말아 명란젓 하나 올려 먹으면 어느새 그릇이 비어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 먹어왔는데, 알고 보니 젓갈이 발효 과정에서 혈압에 도움을 주는 물질을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짜서 건강에 안 좋다고만 생각했던 음식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수천 년 밥상 위에 자리한 발효식품 젓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까지 닿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할 때 폐백 음식 목록에 젓갈을 뜻하는 '해(醢)'가 포함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왕실 혼례 상에 오를 만큼 귀한 식재료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그 전성기가 열려 당시 요리 문헌에 기록된 젓갈 종류만 150가지가 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뷔페에 가면 저는 어김없이 샐러드부터 접시에 가득 담습니다. 그것도 두 접시. 드레싱 없이 채소만 먹는 건 토끼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라 시큼한 식초 드레싱은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매일 이렇게 즐겨 먹으면서도 식초가 어디서 왔는지, 왜 이렇게 다양한 곳에 쓰이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시작이 꽤 뜻밖이었습니다.식초의 탄생배경, 상한 술에서 미식으로 식초는 처음부터 누군가 의도해서 만든 물질이 아닙니다. 영어로 비네거(vinegar), 프랑스어로는 뱅 에그리(vin aigre)인데, 직역하면 '시큼해진 와인'입니다. 즉, 식초의 출발점은 그냥 오래되어 상한 술이었습니다. 어느 날 와인을 꺼내 마시려는데 술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입안을 찌르는 신맛만 남아 있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된장찌개는 저한테 그냥 음식이 아닙니다. 어릴 때 할머니 손맛이 배어 있는, 밥상에서 빠지면 허전한 그런 음식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된장이 암, 당뇨와 연결된다는 주장을 접했을 때, 처음엔 그냥 흘려들으려다가 멈칫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추억의 음식이어도 몸에 해롭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요.된장이 곰팡이균 음식이라는 주장, 어디서 나왔나 된장이 나쁘다는 주장의 핵심은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아플라톡신(Aflatoxin)입니다. 아플라톡신이란 아스페르길루스(Aspergillus) 속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독성 물질로,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성분입니다. 된장은 누룩균을 이용해 발효하는 과정에서 이 곰팡이가 관여할 수 있고, 일부에서는 아플라톡신이 ..
청국장에는 유산균이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평생 청국장을 발효 식품의 대명사로 여기며 먹어왔는데, 그 발효를 이끈 주인공이 유산균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된장에 비하면 발효기간이 현저히 짧은 청국장에서 나오는 맛은 된장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청국장을 청국장답게 만드는 것, 고초균의 정체 청국장의 발효를 담당하는 균은 고초균(Bacillus subtilis)입니다. 고초균이란 볏짚이나 토양처럼 마른 풀이 있는 환경에서 주로 서식하는 발효 미생물로, '고초'라는 이름 자체가 마른 풀을 뜻하는 한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옛날에 청국장을 만들 때 볏짚을 사용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어..
솔직히 저는 고추장을 그냥 매운 양념 정도로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반찬이 없으면 고추장 하나 찍어 밥을 먹던 게 부끄럽기도 했는데, 이제 와 돌아보면 그게 꽤 오랜 역사와 과학이 담긴 식문화였더라고요. 고추장을 단순한 양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은 발효식품으로 볼 것인지, 저는 후자 쪽으로 완전히 마음이 기울었습니다.간장·된장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가장 깊이 뿌리내린 유래와 역사 고추장은 사실 삼총사 중 막내입니다. 간장과 된장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만들어진 것과 달리, 고추장은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고추가 들어오기 전에도 '초시'라는 매운 된장이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초시란 산초나 후추 등을 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