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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 (고초균, 발효, 장수음식)

by 움치둠치 2026. 6. 14.

청국장에는 유산균이 단 한 마리도 없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평생 청국장을 발효 식품의 대명사로 여기며 먹어왔는데, 그 발효를 이끈 주인공이 유산균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청국장을 청국장답게 만드는 것, 고초균의 정체

청국장의 발효를 담당하는 균은 고초균(Bacillus subtilis)입니다. 고초균이란 볏짚이나 토양처럼 마른 풀이 있는 환경에서 주로 서식하는 발효 미생물로, '고초'라는 이름 자체가 마른 풀을 뜻하는 한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옛날에 청국장을 만들 때 볏짚을 사용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 안방 아랫목 이불 속에 커다란 항아리가 숨겨져 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발효되는 며칠 동안 집 안 가득 퍼지던 구수한 냄새가 지금도 코끝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이불을 들춰보다가 어머니께 혼이 났던 기억도 함께요. 그때는 그저 맛있는 음식이 되어가는 과정인 줄만 알았는데, 40도 안팎의 온돌 열기가 고초균이 증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고초균은 40도 전후의 온도와 적당한 습도에서 약 30분마다 두 배씩 증가합니다. 10시간이면 한 마리가 100만 마리 이상으로 불어나고, 발효가 완성된 청국장 한 숟가락에는 무려 10억 마리에 달하는 고초균이 살아있습니다. 이 고초균이 콩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과정에서 칼슘, 비타민 B군 같은 미네랄 함량이 크게 높아집니다.

특히 주목할 성분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비타민 K2(메나퀴논)입니다. 비타민 K2란 혈관 벽에 칼슘이 침착되는 것을 억제하고 뼈에 칼슘을 고정하는 단백질인 오스테오칼신을 활성화하는 지용성 비타민입니다. 유제품에 들어있는 비타민 K1이 체내에서 작용하는 시간이 1시간 내외인 데 반해, 청국장의 비타민 K2는 섭취 후 3일 가까이 활성을 유지합니다. 둘째는 나토키나제입니다. 나토키나제란 혈전을 직접 용해하는 단백질 분해 효소로, 혈액 응고의 주성분인 피브린에 작용해 혈전을 분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국장이 유산균 식품과 다른 결정적인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 호기성 발효: 고초균은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세균이라 공기 중에 노출한 채 발효시킵니다. 유산균처럼 밀폐 환경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내열성: 고초균의 포자는 100도에서 40분간 끓여도 살아남을 만큼 열에 강합니다. 그래서 찌개로 끓여서 먹어도 장까지 살아 도달할 수 있습니다.
  • 내산성: 위산에도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유산균처럼 장용 코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 건조 저항성: 건조한 환경에서도 포자 형태로 생존하므로 가루 형태의 제품으로도 활용됩니다.

고초균이 장 속에서 활성화되면 유산균, 특히 락토바실러스 계열의 생존 수를 높이고 성장을 돕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식품과학회지). 고초균이 장내 환경을 유산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단순히 유산균을 보충하는 것과는 다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먹어온 청국장, 그 역사와 제 솔직한 생각

청국장이 언제부터 한국인의 밥상에 올랐는지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콩을 발효시키는 두장(豆醬) 문화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있었고, 고구려가 만주를 근거지로 한 콩의 민족이었던 만큼 메주를 빠르게 발효시키는 방식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헌에 '전국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는 건 18세기 농업서 증보산림경제이고, '청국장'이라는 표기가 정착된 것은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라는 조리서에서입니다.

역사적 해석 중 청국장의 '청국'이 청나라를 뜻한다는 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설이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전국장, 청육장 등 다양한 표기가 혼재했던 것을 보면, 오히려 '끓인 누룩'을 뜻하는 전국정이 음운 변화를 거쳐 청국장이 된 것이라는 설이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역사적 추정이 사실처럼 굳어지는 것에는 늘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2024년,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공동체의 연대를 촉진한다"고 등재 이유를 밝혔습니다. 된장, 간장, 청국장을 아우르는 우리의 두장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입니다.

제가 직접 여러 청국장집을 돌아다녀 봤는데,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을 재현하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너무 짜게 만들어주신 할머니의 청국장을 억지로 먹은 이후 10년 가까이 청국장을 입에도 대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간을 제대로 못 맞추셨던 것이겠지만, 어린 마음에 원망이 쌓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파주출판단지 근처를 지나다 작은 간판 하나를 보고 충동적으로 들어간 허름한 식당에서 그 맛에 근접한 청국장을 만났습니다. 제 경험상 청국장 맛은 레시피보다 발효 환경과 콩의 품질에 훨씬 더 많이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그 집도 특별한 비법보다는 묵은 방식 그대로 발효시키는 집이었으니까요.

이소플라본(isoflavone)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소플라본이란 콩에 함유된 폴리페놀 계열의 식물성 에스트로겐으로, 발효 과정을 거치면 체내 흡수율이 크게 높아지는 형태로 전환됩니다. 생콩보다 발효된 청국장에서 이소플라본의 생체 이용률이 높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심장 질환으로 항응고제를 복용 중인 분이라면 비타민 K2의 영향으로 청국장 섭취 여부를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하셔야 합니다.

청국장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많이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고초균이 어떤 경로로 몸에 이롭게 작용하는지까지 알고 먹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 청국장찌개 한 뚝배기를 끓이면서 이불 속에서 항아리가 익어가던 아랫목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청국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수백 년 한국인의 장 속에서 함께 살아온 문화유산입니다. 자주 드시되, 가급적 마지막에 넣고 불을 끄는 방식으로 조리하시길 권합니다. 고초균이 만들어낸 생리활성 물질들이 고온에 오래 노출되면 활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결정은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FhQGPjg-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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