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기사식당에서 우연히 먹은 제육볶음 한 그릇이 제 인생 음식 목록을 바꿔놨습니다. 냄비째 올라온 매콤한 양념의 돼지고기, 아삭한 채소, 그 조합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 후로는 제육볶음을 먹기 위해 기사식당을 찾아 다닌 적도 많았습니다. 한국 남성들이 제육볶음을 유독 좋아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 이후로 왜 이 음식이 이렇게 오래 사랑받아 왔는지 직접 파고들어 봤습니다.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제육볶음의 뿌리 제육볶음의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됐다는 건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1670년경 안동 장씨가 집필한 조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 야조육(野猪肉), 즉 멧돼지 고기를 활용한 조리법이 등장합니다. 음식디미방이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글 조리서로,..
솔직히 저는 잡채가 원래 면 요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중국집에서 당면 없이 야채와 고기만 나오는 잡채를 받아 들고 황당했던 그날, 오히려 제가 잡채를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간장 베이스의 달콤짭짤한 맛과 탱글탱글한 당면 식감으로 맵찔이인 제게 최고의 음식이었던 잡채, 그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간신의 뇌물에서 시작된 잡채의 역사 잡채(雜菜)란 한자 그대로 풀면 '여러 채소를 섞은 요리'를 뜻합니다. 이름만 보면 소박한 채소 요리처럼 느껴지지만, 탄생 배경은 꽤 정치적입니다. 조선 15대 왕 광해군 시절, 호조판서를 지낸 이충이라는 인물이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집에서 만든 진귀한 음식을 궁궐로 보냈는데, 그중 왕의 입맛을 가장 사로잡은 것이 바로 잡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