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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사의 두부조림, 포증과 조포사

움치둠치 2026. 9. 15. 21:15

목차


    두부조림은 일상에서 가장 흔한 반찬 중의 하나입니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두부가 있으면 후딱 만들 수 있는 그런 반찬입니다. 그런데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를 찾아갔다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600년 넘게 이어져 온 두부 이야기가 이 절 안에 살아 있었습니다.

     

     

     

    진관사와 조포사, 두부를 만들던 절의 이야기

    진관사는 지금은 은평뉴타운이 들어서서 아파트 바로 근처의 절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제법 자연 속에 있는 절이었습니다. 제가 진관동에 살아서 가끔 놀러 갔었는데, 서울에 이런 절이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즈넉한 절이었습니다.

     

    진관사에 들어서면 스님들이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처음엔 좀 의외였습니다. 수행이라고 하면 좌선이나 독경만 떠올렸으니까요. 그런데 스님께서 이걸 울력(運力)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울력이란 움직일 운(運)에 힘 력(力)을 써서, 함께 몸을 써서 일하는 공동 수행을 뜻합니다. 마당을 쓸고 두부를 만들고 장을 담그는 일 자체가 수행의 과정이라는 거였습니다.

     

    진관사는 조선 시대에 조포사(造泡寺)였습니다. 조포사란 두부를 전담으로 만들어 왕실에 공급하던 사찰을 말합니다. '포(泡)'는 콩물이 끓을 때 올라오는 거품을 뜻하는 글자인데, 두부 만드는 과정에서 이 거품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진관사에서 만든 두부는 왕실 제사상과 홍릉, 소릉, 창릉 등 인근 왕릉에 공급되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납품 지정 업체인 셈인데, 그 납품처가 왕실 제사였다는 게 가볍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 두부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느냐 하면, 중국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상궁을 초청해 두부 만드는 법을 직접 배워 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육식을 금하는 불교 사찰에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두부의 중요성은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을 겁니다.

     

    일곱 그릇을 비웠다는 포증, 두부찜의 원형

     

    진관사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두부 요리가 있습니다. 포증(泡蒸)입니다. 포증이란 두부를 으깨어 양념과 함께 찌거나 조리는 방식의 전통 두부 음식으로, 지금의 두부찜에 해당합니다. 조선 시대 신숙주의 문집에도 등장하는데, 진관사 주지 스님이 학자들을 불러 포증을 대접했고 홍일 스님이 그 자리에서 일곱 그릇을 비웠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합니다.

     

    일곱 그릇을 단숨에 비울 정도라니, 이건 제가 상상하는 두부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직접 그 조리 과정을 보면서 왜 그런지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포증의 양념은 소금, 후추, 참기름이 전부입니다.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것으로 맛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재료를 최소화한 음식이 오히려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는 걸, 저는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찰 음식이라 하면 파, 마늘, 부추, 양파, 달래를 쓰지 않습니다. 이 다섯 가지를 오신채(五辛菜)라고 하는데, 오신채란 기운을 강하게 자극해 수행을 방해한다고 여겨 금하는 채소들을 말합니다. 진관사에서는 파 대신 미나리를 씁니다. 습한 곳에서 사시사철 뿌리를 내리고 강인하게 자라는 미나리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스님께서 미나리를 '삼덕(三德)의 채소'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말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두부조림의 과학, 왜 먼저 구워야 하는가

     

    두부조림을 만들 때 많은 분들이 귀찮다고 그냥 생두부에 양념을 붓고 끓이시는데, 저도 한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결과물이 늘 퍽퍽하거나 부서진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두부는 수분 함량이 80% 이상입니다. 그 상태로 양념에 넣으면 단백질 조직이 수분을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집니다.

     

    기름에 먼저 구우면 열 변성(熱變性)이 일어납니다. 열 변성이란 단백질이 열에 의해 구조가 바뀌면서 겉면에 단단한 막을 형성하는 현상입니다. 이 막이 이후에 양념을 넣고 졸이는 과정에서 두부의 형태를 지켜줍니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겁니다. 제가 직접 두 방식을 비교해 봤는데, 구운 쪽과 안 구운 쪽의 차이가 확연했습니다. 불을 너무 세게 하면 두부가 딱딱해지니 중약불로 천천히 앞뒤를 노릇하게 구워야 한다는 것도 그날 배운 포인트였습니다.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데는 멸치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중간 크기 멸치 한 줌을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린 뒤 미림을 살짝 뿌려 비린내를 잡고 양념에 미리 섞어두면, 멸치 자체가 천연 글루타민산나트륨(MSG) 역할을 합니다. 글루타민산나트륨이란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 계열의 천연 성분으로, 멸치·다시마·된장 등에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국물이 깊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부조림 레시피의 핵심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두부를 굵직하게 썰어 중약불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밑이 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2. 팬 바닥에 양파를 깔고 구운 두부를 올린 뒤, 미리 섞어둔 양념(고춧가루·다진마늘·진간장·멸치액젓·미림·참기름·통깨·물 300ml)을 끼얹는다.
    3. 강불로 3분 졸인 뒤 불을 줄이고 물엿 1.5스푼을 넣어 2분 더 졸인다.
    4. 대파·홍고추·청양고추를 올리고 불을 끄면 완성이다.

     

    이 순서 중 양파를 바닥에 까는 방식은 처음에는 그냥 넘겼는데, 실제로 해보니 두부가 팬에 눌어붙지 않고 양파 자체도 단맛이 배어나와 국물 맛이 한층 깊어졌습니다. 작은 차이인데 결과가 꽤 달랐습니다.

     

    공양간에서 시작된 수행, 음식이 약이 된다는 말

     

    진관사 스님 중 한 분은 사찰 음식 명장입니다. 행자 때 하루 200명 밥을 49공탄 화덕으로 지으며 공양간에서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10년은 그냥 버텼고, 10년이 지나니까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먹고 건강해진다는 게 이해가 됐다고요. 수행이 되어야 그걸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말이 처음엔 좀 거창하게 들렸습니다. 그런데 공양간 안에서 무로 팬을 닦는 장면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무로 기름을 바르면 고르게 얇게 펴 바를 수 있고 깨끗하게 닦아내는 효과도 있습니다. 조리 도구 하나 닦는 방식에도 수백 년의 경험이 쌓여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사찰 음식은 그냥 채식이 아니라 오랜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발효 식품과 사찰 음식 문화에 대한 연구는 농촌진흥청에서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콩 발효 식품의 단백질 흡수율과 영양학적 가치에 관한 자료를 보면 두부를 기름에 구워 조리할 경우 지용성 영양소의 체내 흡수율이 생두부 대비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결과가 확인됩니다. 조상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던 방식을 과학이 뒤늦게 입증한 셈입니다. 또한 문화재청에 따르면 진관사는 한국 근현대 불교 역사의 주요 유적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독립운동 관련 유물이 발굴된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최고의 양념은 마음"이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그냥 덕담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행자 시절 수백 명 밥을 지으며 10년을 버텨온 분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무게가 달랐습니다.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음식이 달라진다는 건, 사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한 번쯤 느끼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두부조림 하나에 이렇게 긴 이야기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진관사를 다녀온 뒤로 저는 두부를 구울 때 예전보다 조금 더 천천히 합니다. 중약불에서 서두르지 않고 앞뒤를 고르게 굽는 그 시간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두부조림을 처음 만들어보려는 분이라면, 먼저 두부를 기름에 제대로 구워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그 한 단계가 결과물을 완전히 바꿔줄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yW49TMa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