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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뀔 때 입맛이 없어지면 항상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강된장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끓여 주던 강된장은 너무 짜고 들어간 재료도 거의 없었지만 최고의 반찬이었고 밥투정도 하지 않고 고봉밥 두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짜지 않고 여러가지 재료를 더해서 더욱 맛있는 강된장을 만듭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우렁을 넣은 강된장을 특히 좋아하는데, 여기에 뼈 건강과 연결된 재료 조합까지 따져가며 끓였더니 별미 중에 별미였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이 조합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오묘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강된장이라는 이름
저도 처음엔 그냥 "되직하게 끓인 된장찌개"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强)'이 아니라 '강(乾)'에 가까운 의미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접두사 '강-'은 국물을 최소화한, 물기 없이 된 상태를 뜻합니다. 강콩, 강조치처럼 쓰이는 방식과 같은 맥락입니다.
강된장의 역사적 뿌리를 따라가면 조선 후기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까지 닿습니다. 시의전서란 조선 후기에 편찬된 한글 조리서로, 된장을 베이스로 끓인 '토장조치(土醬調治)'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토장조치란 된장을 주재료로 채소와 고기를 다져 넣고 자작하게 끓인 요리를 뜻하는데, 지금 우리가 만드는 강된장과 조리 방식이 거의 같습니다.
또 재미있는 건 쌈 문화와의 연결입니다. 중국 문헌 해동역사(海東歷史)에는 고구려인들이 상추에 밥을 싸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흘러내리지 않고 채소 위에 단단히 얹혀야 제대로 쌈을 쌀 수 있으니, 국물 없이 되직한 강된장 형태가 자연스럽게 발달했을 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이 해석이 꽤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쌈을 싸다가 된장 국물이 줄줄 흐르는 경험을 해보셨다면 공감하실 겁니다.
비타민K2와 칼슘패러독스, 멸치 하나로 연결됩니다
우렁 강된장을 만들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재료 조합이었습니다. 우렁은 철분이 풍부해서 빈혈 예방과 여성 골다공증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잔멸치를 통째로 넣는다는 발상이 처음엔 좀 낯설었습니다. 멸치는 국물 내는 용도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칼슘패러독스(Calcium Paradox)라는 개념을 접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칼슘패러독스란 칼슘을 충분히 섭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칼슘이 뼈로 가지 않고 혈관벽에 쌓이는 현상을 뜻합니다. 칼슘을 '많이' 먹는 것보다 '제대로' 흡수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서도 칼슘 흡수를 위한 비타민D와의 병용 섭취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잔멸치의 역할이 나옵니다. 큰 멸치보다 잔멸치에 칼슘과 비타민D 함량이 높고 균형이 잘 맞다는 시각이 있는데, 저도 실제로 써보니 국물 맛이 더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비타민D(Vitamin D)란 소장에서 칼슘과 인의 흡수를 돕고 뼈에 쌓아두는 역할을 하는 지용성 비타민입니다. 비타민D가 부족하면 칼슘이 혈관 속을 떠돌다 혈관벽에 달라붙어 석회화(Calcification)될 수 있습니다. 석회화란 혈관이나 조직에 칼슘이 비정상적으로 침착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청국장을 함께 넣는 것도 이 흐름과 이어집니다. 청국장에는 메나퀴논(Menaquinone), 즉 비타민K2가 풍부합니다. 메나퀴논이란 칼슘이 뼈에 결합하도록 돕는 단백질을 활성화시키는 성분으로, 쉽게 말해 칼슘이 뼈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가게 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우유나 치즈에도 들어있지만 체내 머무는 시간이 짧은 반면, 청국장에서 섭취한 메나퀴논은 3일 정도 체내에 머문다는 점이 다릅니다. 강된장에 된장만 쓰지 않고 청국장을 함께 넣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재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잔멸치: 칼슘과 비타민D 공급. 큰 멸치보다 균형 잡힌 함량으로 통째로 섭취 가능
- 청국장: 메나퀴논(비타민K2) 공급. 칼슘의 뼈 결합을 돕고 혈관 침착을 억제
- 말린 표고버섯: 햇빛에 말린 것은 비타민D 함량이 생표고 대비 약 10배 높음. 불린 물은 육수로 활용
- 두부: 식물성 단백질 공급과 함께 된장·청국장의 염도를 낮춰주는 역할
- 들기름 또는 참기름: 비타민D와 비타민K2는 지용성 비타민이므로 기름과 함께 먹어야 흡수율이 올라감
이 순서를 보고 나면 재료 하나하나가 그냥 들어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저는 처음에 "멸치는 국물용 아닌가" 생각했는데, 통째로 먹어야 의미가 있다는 걸 이해하고 나서는 잔멸치 선택이 맞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었습니다.
우렁 강된장, 직접 만들어본 순서와 포인트
우렁은 밀가루 한 스푼을 넣고 물로 빠락빠락 씻어야 이물질이 제대로 빠집니다. 세 번 정도 반복한 뒤 물기를 꽉 짜고 소주 두 스푼을 섞어 잠깐 두면 비린내가 확실히 줄어듭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소주 코팅 단계를 건너뛰었을 때와 비교하면 냄새 차이가 꽤 납니다.
양파 반 개를 먼저 식용유에 2분 정도 볶아 카라멜라이징(Caramelizing)합니다. 카라멜라이징이란 당분이 열에 의해 분해·갈변되면서 단맛과 고소함이 깊어지는 반응을 뜻합니다. 이 과정 하나만으로도 강된장의 베이스 맛이 달라집니다. 여기에 다진 마늘, 청양고추, 홍고추, 애호박을 넣고 볶다가 우렁을 넣어 2~3분 더 볶으면 남은 비린내가 날아갑니다.
물 200ml를 붓고 된장 세 스푼을 풀어준 뒤, 미리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린 잔멸치를 한 줌 넣습니다. 멸치를 미리 살짝 가열해두면 비린내가 줄고 감칠맛이 올라옵니다. 강불로 끓이다가 두부를 넣고 중불로 5분, 약불로 다시 5분, 총 10분 정도 졸입니다. 두부를 잘게 썰지 않고 으깨서 넣으면 밥에 비볐을 때 훨씬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마지막에 참기름이나 들기름 한 스푼을 두르면 지용성 비타민 흡수율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완성 후 30분 식혔다가 조청 한 스푼을 넣고 섞어주면 맛이 확 달라집니다. 제 경험상 이 단계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뭔가 부드럽게 맛이 정돈되는 느낌이랄까요. 청국장 냄새가 부담스럽다면 고추장 반 스푼을 추가하면 냄새가 한결 순해집니다.
봄 쌈 채소가 나오는 시기에 이 우렁 강된장 하나면 반찬 걱정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재료 조합의 원리를 알고 만드니, 그냥 따라 만들 때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칼슘패러독스를 피하려면 칼슘만 챙길 게 아니라 비타민D와 비타민K2를 함께 섭취해야 한다는 점, 강된장 한 그릇에 그 조합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께서 끓여 주시던 재주를 부리지 않고 된장만으로 만든 짜디 짠 그 강된장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