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7월 민어 한 마리 가격은 30만 원을 훌쩍 넘어갑니다. 그 비싼 생선이 왜 하필 여름에 최고가를 찍는지, 저도 예전엔 이해를 못 했습니다.
해산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저조차 여름만 되면 식중독이 겁나서 회 한 점도 못 먹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작년 여름, 전남 고흥에서 갯장어를 처음 맛본 뒤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름 제철 생선에 대한 편견이 그날 한 끼로 무너졌습니다.
여름에 회를 피해왔던 이유, 그리고 갯장어와의 첫 만남
솔직히 말하면 저는 꽤 오랫동안 여름 회를 기피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여름철에 횟집을 다녀온 뒤 식중독으로 고생하는 걸 여러 번 봤기 때문입니다. 특히 비브리오 패혈증(Vibrio vulnificus infection)이 무서웠습니다. 비브리오 패혈증이란 바닷물에 서식하는 비브리오 불니피쿠스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었을 때 발생하는 감염 질환으로, 면역력이 약한 분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비브리오 패혈증은 7~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며, 치사율이 50%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출처: 질병관리청).
그러니 해산물 마니아인 저도 여름엔 자연스럽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작년 여름에 친구 따라 전남 고흥까지 갔다가 처음으로 갯장어 샤브샤브를 먹었습니다. 그 느낌은 마치 삼겹살을 구워먹는 것이 아니라 수육으로 먹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장어라고 하면 풍천장어처럼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구이를 먼저 떠올리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갯장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끓는 육수에 살짝 데치니 살이 꽃잎처럼 활짝 펼쳐지면서 희고 보드라운 속살이 드러나는데, 깻잎에 올려 한 입 먹는 순간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습니다.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배가 불러도 계속 손이 갔습니다.
갯장어가 하모(はも)라고도 불린다는 것은 현지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하모란 일본어로 '무는 것'을 뜻하는데, 갯장어의 포악한 성질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일반 뱀장어에 비해 지방 함량이 낮아 열량 부담도 적고, 칼슘과 단백질, 비타민 A가 풍부해 여름철 기력 보강에도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잔가시가 촘촘해서 칼집 내기가 어렵다 보니 전문 조리사의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생선이기도 합니다. 고흥 현지에서 먹었기에 더 맛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름에 갯장어를 한 번도 안 드셔본 분들이라면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민어탕, 보양식의 기준을 다시 세우다
갯장어가 여름 별미였다면, 민어는 여름 보양식의 정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에 양반가에서 복날이면 빠지지 않았다는 생선이 바로 민어인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민어는 단백질(protein)이 풍부하고 지방이 적어 소화 흡수율이 높습니다. 단백질이란 우리 몸의 근육과 세포를 구성하는 핵심 영양소로, 여름철 땀을 흘리며 소모된 체력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데 꼭 필요합니다. 여기에 오메가-3(EPA·DHA)까지 함유돼 있어 심혈관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오메가-3란 몸에서 스스로 만들지 못해 음식으로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필수 지방산으로, 혈중 중성지방을 낮추고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민어를 이야기할 때 부레(어표, 魚鰾)를 빼놓으면 섭섭합니다. 어표란 생선의 부력 조절 기관인 부레를 뜻하는데, 민어 부레는 콜라겐 함량이 높아 쫄깃하고 고소한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힙니다. "민어 부레를 안 먹으면 민어를 먹은 게 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민어를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저는 맑은탕을 강력히 권합니다. 매운탕으로 끓이면 얼큰한 맛은 있지만 민어 특유의 시원하고 섬세한 국물 맛이 고춧가루에 묻혀버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아깝습니다. 맑은탕으로 끓이면 민어 살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담백한 육수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호박이나 두부를 조금 넣으면 충분합니다. 민어 고유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매운탕보다는 맑은탕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민어는 6월에서 8월 사이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주로 어획되며, 이 시기의 민어가 살도 가장 오르고 맛도 절정에 달한다고 합니다(출처: 국립수산과학원). 지금이 딱 그 시기입니다.
여름 생선 안전하게 즐기는 법, 이것만 지키면 됩니다
여름에 해산물을 피하는 분들 중에는 식중독이 무서워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몇 가지 원칙만 지키면 여름에도 충분히 안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챙기는 방법들을 정리해봤습니다.
1. 생선은 구입 즉시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고, 실온에 오래 두지 않습니다. 여름철 실온에서 2시간 이상 방치한 해산물은 세균 증식이 급격히 빨라집니다.
2. 회를 먹을 경우에는 반드시 신선도를 직접 확인합니다. 눈이 맑고 탄력이 있는 것을 고르고, 어패류는 살아있는 상태로 조리하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3. 조리 도구는 생선 전용으로 따로 씁니다. 생선을 손질한 칼이나 도마를 채소나 다른 식재료에 그대로 쓰면 교차오염(cross-contamination)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차오염이란 식재료 간 세균이 이동해 오염이 퍼지는 현상입니다.
4. 면역력이 낮은 분들(노약자, 간질환자 등)은 여름철 해산물 날것 섭취를 자제하고 충분히 가열해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5. 갯장어 샤브샤브처럼 육수에 데쳐 먹는 조리법은 식중독 걱정을 줄이면서도 맛을 즐길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제가 여름 해산물 공포를 갯장어로 극복한 것도 이 덕분입니다.
여름에 생선을 기피하는 심리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위의 원칙들을 잘 지킨다면 생각보다 리스크는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제철 생선 한 끼가 여름 보양식으로 그 어떤 보충제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농어와 병어, 사이드로 챙길 여름 생선들
민어와 갯장어 못지않게 여름에 즐기기 좋은 생선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농어와 병어입니다. "7월 농어는 바라보기만 해도 약이 된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여름 농어는 살에 지방이 올라 고소하고 깊은 맛을 냅니다. 흰 살 생선 특유의 단단하고 찰진 식감이 좋아서 저는 농어는 회보다 지리탕으로 즐기는 편입니다. 맑은 국물에 간을 최소화해서 끓이면 농어 살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병어는 뼈가 연하고 살이 달큼해서 먹기 편한 생선입니다. 제철 병어는 세꼬시(細骨刺)로 즐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꼬시란 뼈째 얇게 썰어 먹는 방식으로, 뼈가 연한 생선에만 적용할 수 있는 조리법입니다. 병어는 비타민 B1, B2가 풍부해 여름철 피로 해소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감자와 고사리를 깔고 매콤하게 조린 병어조림은 밥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게 만드는 맛입니다.
농어나 병어는 민어나 갯장어에 비해 가격 부담이 낮아 접근성이 좋습니다. 여름 보양식 예산이 넉넉하다면 민어탕을, 좀 더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병어조림이나 농어 지리탕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저는 올여름도 민어탕과 갯장어 샤브샤브를 꼭 한 번씩 더 먹을 생각입니다. 무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을 때 보양제보다 먼저 떠오르는 게 제철 생선 한 상이 된 건 고흥 그 한 끼 덕분입니다. 삼복더위가 본격화되기 전에, 지금이 딱 민어와 갯장어를 즐기기 좋은 시기입니다. 한 번이라도 드셔본 적 없다면 이번 여름이 도전해볼 기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