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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볶음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중에 하나라서 우리집에서는 떨어지지 않고 1년 365일 밥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반찬입니다. 잔멸치, 중멸치, 대멸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좋아하며 간장볶음과 고추장볶음도 가리지 않고 양쪽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잔멸치는 주로 간장볶음으로 많이 해먹고, 조금 큰 멸치는 고추장볶음으로 해먹는 것이 어울리는 듯 합니다.
멸치볶음이 한국 식탁에 본격적으로 오른 건 1970년대 식용유 대량 보급 이후입니다. 그 전까지는 삶거나 찌는 조리법이 전부였으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먹어온 이 반찬이 사실은 꽤 최근에 완성된 형태라는 것이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멸치라는 생선, 이름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멸치를 '추어(鯫魚)' 또는 '멸어(蔑魚)'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산어보란 1814년에 완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 전문 도감으로, 흑산도 인근 수산 생물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문헌입니다. 여기서 이미 "국을 끓이거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로 만들어 먹는다"고 적혀 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건조 보관법이 조선 시대에도 일상화되어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이름의 유래도 두 가지 설이 나뉩니다.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죽어버린다 해서 '멸망할 멸(滅)' 자를 썼다는 설, 그리고 개체 수가 워낙 많아 흔하고 값이 없다는 의미로 '업신여길 멸(蔑)' 자를 썼다는 설입니다. 김려의 우해이어보(牛海魚譜)에서는 "성질이 성급하여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고 기록했는데, 두 문헌을 비교해 보면 전자의 유래 설이 조금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어떤 이름이든, 흔하고 소박한 생선이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의 밑반찬 주인공이 됐으니 인생 역전도 이런 역전이 없습니다.
볶음 조리법이 탄생하기까지: 건조 기술과 기름의 역사
일반적으로 멸치볶음은 오래된 전통 요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 실제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고 꽤 의외라고 느낀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볶음 요리 자체가 한국에서 대중화된 시기는 생각보다 최근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권현망(巾縣網) 어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권현망이란 두 척의 배가 거대한 그물을 양쪽에서 끌어 멸치를 대량으로 포획하는 어법으로, 지금도 남해안 지역에서 활발히 사용됩니다. 이 대량 포획 체계와 함께 배 위나 포구에서 멸치를 즉시 삶아 말리는 자숙건조(煮熟乾燥) 방식이 정착했습니다. 자숙건조란 원재료를 한 번 삶은 뒤 건조하는 방식으로, 비린내를 억제하고 보존성을 크게 높이는 가공법입니다. 이 덕분에 잡내가 적은 건멸치가 전국으로 유통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 방을 더한 것이 1970년대 이후 대두유(大豆油), 즉 콩기름의 대량 생산과 보급입니다. 기름이 귀하던 시절에는 '볶는다'는 행위 자체가 흔치 않았습니다. 기름이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바짝 마른 멸치를 팬에 볶아 고소함을 끌어올리는 지금의 조리법이 완성된 것입니다.
도시락 문화가 만든 국민 밑반찬의 자리
멸치볶음이 대표 밑반찬으로 굳어진 데는 1970~80년대 도시락 문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양은 도시락에 담겨야 했던 반찬의 조건은 엄격했습니다.
- 국물이 흘러내리지 않을 것
- 쉽게 상하지 않아 점심때까지 버틸 것
- 밥과 잘 어울려 밥도둑 역할을 할 것
- 칼슘 등 영양소가 풍부할 것
멸치볶음은 이 네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거의 유일한 반찬이었습니다. 특히 칼슘(calcium) 함량이 탁월합니다. 칼슘이란 뼈와 치아를 구성하는 필수 무기질로, 성장기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한 영양소입니다. 국립농업과학원 식품성분표에 따르면 건멸치 100g에는 칼슘이 약 1,320mg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우유 한 컵의 약 11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성장기 자녀의 도시락 반찬으로 어머니들이 멸치볶음을 고집했던 데는 이런 근거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레시피도 다채롭게 분화했습니다. 고추장으로 양념한 버전,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더한 버전, 청양고추로 칼칼함을 살린 버전까지. 지금은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를 만큼 완전히 한국인의 것이 된 반찬입니다.
직접 만들어보니 달랐던 것들: 볶음 기술의 핵심
레시피를 보면 다들 비슷해 보이는데, 직접 만들어보면 결과물이 천차만별입니다. 제가 여러 번 시도해보면서 가장 차이가 컸던 부분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수분 제거입니다. 냉장 보관한 멸치는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 그냥 볶으면 비린내가 올라옵니다. 달군 팬에 기름 없이 약불로 2분 정도 멸치만 먼저 볶아줘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분이 날아가면서 표면에 붙어 있던 잡내 성분도 함께 날아갑니다. 그다음 채반(체)에 볶은 멸치를 올려서 털어주면 멸치가루와 잡물이 아래로 빠집니다. 이 전처리 과정을 거친 멸치와 그냥 볶은 멸치는 맛이 다릅니다. 솔직히 이건 해보기 전까지는 크게 차이가 없겠거니 했는데,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카라멜라이징(caramelizing)입니다. 카라멜라이징이란 당분이 열을 받아 갈색으로 변하면서 풍미가 깊어지는 화학 반응으로, 양파를 약불에서 천천히 볶을 때 일어납니다. 다진 양파를 볶아서 사용하면 멸치볶음의 단맛이 인위적이지 않고 입에 착 감기는 자연스러운 맛이 됩니다. 성질이 급해서 강불로 빠르게 볶으면 이 반응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양파의 자극적인 향만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 단계에서 2~3분을 더 참으냐 못 참으냐가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세 번째는 양념 투입 타이밍입니다. 간장과 물엿을 먼저 충분히 졸여서 양념이 어우러진 뒤에 멸치를 넣어야 합니다. 멸치를 먼저 넣고 양념을 부으면 멸치가 양념을 흡수하면서 딱딱해지고, 멸치 자체가 이미 짜기 때문에 간장이 더해지면 짠맛이 배가됩니다. 간장 없이 올리고당과 매실액기스(梅實液, 매실을 설탕에 절여 발효시킨 액상 조미료)로 단맛과 감칠맛을 잡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매실액기스는 신맛이 멸치의 비린 뒷맛을 잡아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 부분도 여러 번 해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한 내용입니다.
견과류를 넣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두, 잣, 아몬드 같은 견과류는 멸치와 함께 볶기 전에 먼저 마른 팬에서 1분 정도 단독으로 볶아줘야 합니다. 견과류에도 수분과 잡내가 있어서 이 과정을 건너뛰면 고소함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청양고추는 넣지 않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청양고추의 강한 향이 멸치 고유의 고소한 맛을 덮어버리거든요. 꽈리고추라면 향이 순해서 어울리지만, 청양고추는 별도의 반찬으로 따로 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완성된 멸치볶음은 냉장 보관보다 실온 보관이 맞습니다. 냉장고에 넣으면 수분이 다시 생기면서 바삭한 식감이 무너집니다. 물론 여름철 장기 보관은 냉장이 맞지만, 2~3일 내에 먹을 분량이라면 서늘한 실온에 두는 편이 훨씬 맛있습니다.
멸치볶음 한 접시가 완성되기까지 뒤에는 조선 시대 건조 기술부터 1970년대 식용유 보급, 도시락 문화까지 꽤 긴 역사가 쌓여 있습니다. 레시피는 단순해 보여도 전처리와 카라멜라이징, 양념 투입 순서를 제대로 지키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한 번 제대로 만들어두면 2~3일은 든든한 밑반찬이 해결됩니다. 처음 시도하는 분이라면 양념을 졸이는 단계에서 충분히 기다리는 것, 이것 하나만 기억해도 반은 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