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가 원래 궁중 음식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도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한참 멈칫했습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500원짜리 종이컵에 담겨 나오던 그 음식이 한때는 소고기와 버섯이 들어간 고급 요리였다니요. 그 오랜 역사가 지금 제가 쌀떡볶이를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묘하게 가슴에 걸립니다.
떡의 역사에서 시작된 떡볶이의 뿌리
한국인이 떡을 먹기 시작한 건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확한 곡물을 시루에 안쳐 찌면 떡이 되었고, 4세기 중반 고구려 무덤벽화에도 시루로 떡을 찌는 장면이 남아 있습니다. 시루(甑)란 밑에 구멍이 뚫린 토기 형태의 찜 도구로, 수증기를 이용해 재료를 익히는 전통 조리 기구입니다. 제가 어릴 적 시루에 찌던 시루떡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솥과 시루 사이 틈새를 막아두었던 밀가루 반죽을 몰래 떼어 먹다가 혼이 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슬아슬하고 달달했던 날 것의 반죽 맛이 아직도 선합니다.
가래떡은 집에서 직접 만들지 않고 항상 방앗간에서 뽑아 왔습니다. 절구통에 찰밥을 넣고 공이로 내리치는 동시에 손으로 밥을 재빠르게 뒤집던 그 아슬아슬한 작업과 달리, 가래떡은 대량의 쌀을 압출(押出) 방식으로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압출이란 재료를 강한 압력으로 밀어내어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성형 방법으로, 가정에서 손으로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가래떡이 오늘날 쌀떡볶이의 핵심 재료가 됩니다.
오늘날의 떡볶이와 가장 먼 조상을 이어주는 음식은 '병자(餠炙)'입니다. 병자란 가래떡을 소고기, 버섯, 채소와 함께 꼬챙이에 꿰어 구운 음식으로, 조선시대 궁중에서 즐기던 고급 요리였습니다. 19세기에는 꼬챙이를 빼고 간장에 볶아 졸인 형태인 '떡찜'이 《시의전서》 등 요리서에 등장하고, 20세기 초에 이르러 '떡볶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때까지의 떡볶이는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간을 하고 소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이었으니, 지금의 빨간 떡볶이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던 셈입니다.
떡볶이가 일반 서민에게 닿기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조선 궁중의 '병자'에서 출발해 간장 소스 기반의 떡볶이로 발전
- 1953년 신당동 마복림이 고추장 소스를 처음 적용해 대중화의 문을 열다
- 1962~1977년 혼분식장려운동으로 밀떡·밀고추장이 보급되며 학교 앞 분식집에 정착
- 1970년대 말 즉석 떡볶이 형태로 진화하며 한 끼 식사로 격상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조사에 따르면 떡볶이 가공식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떡볶이가 단순한 길거리 간식을 넘어 하나의 식품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줍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고추장 떡볶이가 위로 음식이 된 이유
저는 단연코 쌀떡파입니다. 솔직히 처음 쌀떡볶이를 집에서 만들어 먹기 전까지는 밀떡이 당연한 줄만 알았습니다. 학생 때 다니던 분식집은 거의 다 밀떡을 썼으니까요. 그런데 쌀떡으로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식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밀떡이 쫀득하다면 쌀떡은 찰지면서도 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만들어보니 쌀떡에는 소스의 점도(粘度)를 높여야 맛이 제대로 납니다. 점도란 액체의 끈끈한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적 성질로, 쌀떡은 표면이 매끄러워 물처럼 묽은 소스는 잘 달라붙지 않습니다. 소스를 약간 꾸덕하게 졸여야 떡 표면에 양념이 고루 입혀지고, 이 꾸덕한 소스가 맵고 달고 짠 맛을 동시에 감싸주면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맛이 됩니다.
고추장 떡볶이가 등장한 건 1953년 서울 신당동에서였습니다. 마복림이 중국집에서 춘장이 묻은 떡 맛에서 영감을 얻어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소스를 만들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빨간 떡볶이가 탄생했습니다. 이후 혼분식장려운동을 계기로 밀떡과 밀고추장이 대량 공급되면서 단가가 크게 낮아졌고, 덕분에 주머니가 가장 가벼운 학생들도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말, 마복림이 좌판을 접고 가게를 새로 열면서 떡볶이에 라면 사리, 달걀, 어묵, 양배추 같은 부재료를 더하고 손님이 직접 끓여 먹도록 하는 즉석 떡볶이 형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방식은 신당동 일대로 퍼지며 지금의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만들었고, 이 유산은 즉석떡볶이 프랜차이즈 '두끼'처럼 다양한 토핑을 한자리에서 즐기는 형태로 계승되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떡이 오래전부터 '관계의 음식'이었다는 점도 떡볶이가 위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공동 식생활을 하던 시절 울타리 안에서 함께 떡을 나눠 먹던 문화가 '우리'라는 말에도 녹아 있다는 해석은 제게 꽤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리'는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되며, 그 원초적인 의미 안에 공동체와 나눔이 이미 담겨 있습니다(출처: 국립국어원).
결국 떡볶이가 주는 힐링은 매운맛에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습니다. 친구들과 분식집 의자에 걸터앉아 깔깔 웃으며 먹던 그 기억, 작은 접시에 담긴 떡볶이 한 점을 나눠 먹던 그 감각이 성인이 된 지금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힘든 날 문득 떡볶이가 당기는 순간 되살아나는 겁니다.
저는 요즘도 기분이 쳐지는 날이면 쌀떡을 사다가 직접 소스를 만들어 먹습니다. 꾸덕하게 졸아드는 고추장 소스 냄새가 올라오는 순간, 그게 위로입니다. 한 번쯤 밀떡이 아닌 쌀떡으로 직접 만들어 보신다면, 떡볶이가 왜 이토록 오래 한국인 곁에 있어왔는지 조금 다르게 느껴지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