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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하지 않은 고기, 수육의 맛

움치둠치 2026. 8. 13. 22:24

목차


    고기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던 나에게 처음 먹고 접했던 고기는 장조림이었습니다. 특히 고기의 지방부위를 싫어하는 나에게는 장조림이 딱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던 식당에 가서 수육을 처음 접했는데 역시나 지방이 붙어있는 고기를 삶아서 내주었습니다. 한점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지방의 느끼함이 적었고 같이 곁들인 김치와 무생채 등이 고기와 어우러져 훌륭한 맛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 후론 굽는 고기보다는 수육을 즐겨 먹게 되면서 왜 어르신들이 수육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도 삶아 먹었다, 수육의 뿌리

    고기를 삶아 먹는 조리 방식은 불을 다루기 시작한 인류 초기부터 존재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후 가축 사육과 함께 자리를 잡았고, 삼국시대에는 잔치 문화와 맞물려 발전했습니다. 특히 중국 사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고기를 익혀 먹는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동이전이란 중국 정사에서 동쪽 이민족의 풍속을 기술한 항목으로 당대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1차 사료입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교였던 탓에 육류 소비가 제한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몽골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몽골식 육류 요리 문화가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한반도 육류 요리 기반이 서서히 넓어지던 전환점으로 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수육은 본격적으로 대중화됩니다. 유교 사상이 강조되면서 제례(祭禮), 즉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올리는 의식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고, 수육은 제사상과 잔치상 모두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조선 왕조실록에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삶아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규합총서(閨閤叢書)나 시의전서(是議全書) 같은 조리서에도 삶은 고기 조리법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규합총서는 조선 후기 여성들이 집안 살림과 요리를 정리한 생활 백과로, 당시 서민과 양반 모두의 식탁 문화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문헌입니다.

     

    누가 뭐래도 수육의 최고봉은 역시 김장담그면서 같이 삶아서 먹는 수육입니다. 갓 담근 김장김치로 싸먹는 수육의 맛은 잊을 수가 없어서 지금도 매년 김장날에는 반드시 수육을 같이 삶아서 먹고 있습니다. 

     

    지방이 많은 고기가 왜 덜 느끼할까, 삶는 과학

     

    저는 오랫동안 고기의 지방 부위를 피해왔습니다. 굽거나 볶으면 지방이 그대로 남아 느끼함이 입안을 감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즐겨 찾던 식당에서 처음 수육을 한 점 먹어봤을 때,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지방이 붙어있는데도 생각만큼 느끼하지 않았고, 고기 자체의 맛이 훨씬 부드럽게 느껴졌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육을 만드는 핵심 과정은 침출(浸出)입니다. 침출이란 재료를 물에 담가 불필요한 성분이 물속으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고기를 오랜 시간 물에 삶으면 포화지방산(飽和脂肪酸), 즉 상온에서 굳는 성질을 가진 동물성 지방 성분이 육수 쪽으로 상당량 빠져나갑니다. 굽거나 볶을 때는 지방이 열로 인해 고기 속에 그대로 갇히거나 표면에 집중되지만, 삶으면 물이 매개가 되어 지방을 외부로 끌어냅니다. 그래서 같은 삼겹살이라도 구운 것보다 삶은 수육이 체감상 덜 느끼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의 식품 연구 자료에 따르면 돼지고기를 삶는 조리 방식이 굽는 방식에 비해 지방 함량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어르신들이 왜 수육을 그렇게 좋아하시는지, 그 한 점을 먹고 나서야 제가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곁들이냐가 수육의 맛을 결정한다

     

    수육 자체도 맛있지만, 솔직히 곁들이는 반찬이 수육을 완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단순히 취향 문제가 아니라 조합에 따라 고기 자체의 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특히 새우젓을 처음 곁들였을 때의 그 경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새우젓은 단순한 짠 양념이 아닙니다. 새우젓에 포함된 프로테아제(Protease), 즉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돼지고기의 소화를 실질적으로 돕고 감칠맛을 끌어올립니다. 거기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참기름을 조금 섞으면 단순한 젓갈이 완전히 다른 소스로 변합니다. 이 조합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수육에 어울리는 대표적인 곁들임 조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새우젓 양념(새우젓 + 고춧가루 + 다진 마늘 + 참기름):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고 감칠맛을 최대화합니다.
    2. 보쌈김치 또는 무생채: 아삭한 식감과 매콤한 산미가 지방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입안을 가볍게 정리해 줍니다.
    3. 쌈 채소(상추, 깻잎) + 쌈장 + 마늘 + 청양고추: 고기, 채소, 장의 풍미가 한 입에 어우러지는 조합으로 남녀노소 가장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보쌈김치와 무생채 조합을 특히 좋아합니다. 무생채의 새콤한 국물이 수육의 기름기를 씻어내는 느낌이 있어서, 고기를 먹고 난 뒤 입안이 훨씬 개운합니다. 고기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던 제가 이 조합을 만난 뒤로 굽는 고기보다 수육을 먼저 찾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삼겹살 문화가 수육을 바꿨다, 현대의 수육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육류 소비 자체가 제한적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경제 성장과 함께 육류 소비가 빠르게 늘었고, 이 과정에서 삼겹살이 대중적인 부위로 자리 잡으면서 수육의 재료 구성도 함께 넓어졌습니다.

     

    목살, 삼겹살, 앞다리살 등 부위별로 다른 식감과 지방 분포를 가진 다양한 수육이 등장했고, 보쌈(보자기에 쌈을 싸서 먹는 음식에서 유래한 조리 형태)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외식 문화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보쌈이란 수육을 채소와 함께 쌈처럼 싸서 먹는 방식을 식당 메뉴로 발전시킨 형태로, 오늘날에는 막국수와 함께 내는 이른바 '보쌈 막국수 세트'가 하나의 정형화된 식사 메뉴로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외식 소비 트렌드 자료를 보면 삶은 고기류를 포함한 전통 보쌈 형태의 외식 수요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으며, 건강한 조리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히려 수육의 선호도가 다시 올라가는 추세입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제가 직접 겪어보니 수육이 어르신들만의 음식이라는 인식은 이미 옛말이 된 것 같습니다. 기름기가 걱정돼 고기를 멀리했던 분들이 오히려 수육에서 타협점을 찾는 경우를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음식이 지금도 식탁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맛있으면서도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방을 멀리하던 제가 수육 한 점으로 생각을 바꾼 것처럼, 처음엔 기름진 고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도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음식입니다. 새우젓 양념에 보쌈김치 한 조각, 거기에 깻잎 쌈 하나면 그게 이미 완성된 한 상입니다. 어르신들이 왜 수육을 고집하는지, 직접 먹어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0bxgnRPg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