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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의 역사 (간장 종류, 발효 기술, 기꼬만)

by 움치둠치 2026. 6. 12.

세계적으로 간장이라고 하면 일본간장이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한때는 그냥 그런 줄 알았습니다. 슈퍼마켓 간장 코너에 가면 육각형 라벨의 기꼬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해외에서 소이소스를 주문하면 으레 그 병이 나오니까요. 그런데 직접 이 역사를 파고들어 보니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가 가르쳐 준 기술이 어떻게 세계 시장을 점령하게 됐는지, 그 경로를 따라가 보면 꽤 씁쓸하면서도 흥미롭습니다.

2천 년을 이어온 발효 기술, 그 뿌리는 어디인가

3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800년 전 중국 기록자가 고구려 땅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당시 삼국지 위지 동이전(魏志 東夷傳)에 딱 한 줄을 남겼는데, "선장양(善藏釀)", 즉 이 민족은 저장과 발효를 잘한다는 찬사였습니다. 위지 동이전이란 위나라가 동쪽 이민족을 기록한 공식 사서로, 외교적 목적으로 파견된 기록자가 직접 관찰한 내용을 담은 1차 자료입니다. 그 시대 이미 콩을 발효하는 기술을 지닌 나라가 중국 기록자에게까지 인정받았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당시 한반도 발효 기술의 핵심에는 메주가 있었습니다. 메주란 삶은 콩을 뭉쳐 발효시킨 덩어리로, 지금의 청국장이나 낫토와 비슷한 형태입니다. 이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키면 위로 뜨는 액체가 간장이 되고, 바닥에 남는 고형물이 된장이 됩니다. 한 덩어리로 두 가지 양념을 동시에 얻는 구조였던 셈입니다. 제가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봤던 장독대가 바로 그 수천 년의 방식이 이어진 풍경이었다는 걸 이제야 실감합니다.

이 기술이 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삼국시대에 소금은 사실상 금에 가까운 물건이었습니다. 내륙 지방에서는 소금 한 줌이 닭 한 마리 값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고, 왕실이 소금 생산을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콩과 소금을 동시에 항아리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왕족과 귀족뿐이었습니다. 683년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하면서 보낸 패백 목록에 장(醬)과 시(豉), 해(醢), 즉 간장과 메주, 젓갈이 당당히 포함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금 마트에서 1,800원에 사는 간장이 7세기에는 왕의 혼수 목록 맨 앞자리에 있었던 겁니다.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 왕실 안에 장고(醬庫)라는 전담 기관이 별도로 세워집니다. 장고란 왕실에서 장을 전문적으로 담그고 관리하는 기관으로, 수백 개의 장독이 늘어선 독립 공간이었습니다. 왕의 수라에 올라가는 된장 맛이 달라지면 장고 담당 상궁이 문책을 받을 정도였으니, 장이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왕실의 권위 그 자체였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민가로 내려와도 이야기는 비슷합니다. "그 집 장맛이 무너지면 가문이 기운다"는 말이 속담처럼 굳어졌고, 시집온 며느리가 수십 년간 장독대를 지키며 담근 장은 그 집안의 연륜을 증명하는 사회적 자산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간장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김밥을 찍어 먹는 조선간장이었는데, 요즘 진간장처럼 달지 않고 묵직하지도 않았습니다. 짜고 담백하면서 미묘한 감칠맛이 올라오는, 딱 소금의 자리를 대신하는 맛이었습니다. 그 맛이 바로 조상들이 수천 년을 이어온 자연 발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기술이 세계 간장 시장의 주인이 된 사연

4세기에서 7세기 사이,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사서는 이들을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부릅니다. 도래인이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기술자 집단을 뜻하며, 야금술, 도기 제작, 문자 정리 기술 등을 함께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발효 기술도 그 목록에 포함됩니다. 낯선 땅에서 밥을 먹으려면 간이 맞아야 하고, 간을 맞추려면 장이 있어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건너간 기술이 일본 땅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장과 일본장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기점이 이후 수백 년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 한국장: 콩만 사용, 바실러스 서브틸리스(Bacillus subtilis)라는 자연 세균이 주도하는 자연 발효 방식. 바실러스 서브틸리스란 토양과 공기 중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유익균으로, 별도의 접종 없이 자연에서 날아와 콩에 정착해 발효를 이끄는 균입니다.
  • 일본장: 콩에 쌀이나 밀을 혼합, 아스페르길루스 오리제(Aspergillus oryzae)라는 특정 곰팡이를 인위적으로 배양해 접종하는 코지(麴) 방식을 사용. 코지란 발효에 쓸 특정 곰팡이를 인간이 의도적으로 키워서 재료에 심는 설계 발효 기법으로, 균일한 품질을 단기간에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한국장은 2~3년 이상 숙성시키는 장기 자산으로 남았고, 일본장은 6개월 안팎의 짧은 숙성으로 반복 생산이 가능한 상품이 됐습니다. 가문의 장독이냐, 시장의 상품이냐. 이 차이가 자본주의를 만나면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1661년, 일본 지바현 노다(野田)의 다카나시(高梨) 가문과 모기(茂木) 가문이 에도강변에 간장 양조장을 세웁니다. 노다는 강이 흘러 운반이 유리했고, 근처에서 콩과 소금, 밀을 구하기 쉬웠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인구 100만이 넘던 세계 최대 도시 에도(江戶)가 바로 코앞이었습니다. 1838년에는 모기 가문이 기꼬만(亀甲萬)이라는 이름을 상표로 등록합니다. 기꼬만이란 거북 등껍질 안에 萬 자를 넣은 디자인으로, 거북처럼 만 년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입니다. 지금 슈퍼마켓에서 보는 그 육각형 로고가 바로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1917년에는 노다 지역의 양조장 여덟 가문이 합쳐 노다쇼유(野田醤油) 주식회사를 세웁니다. 이 회사가 1964년 사명을 기꼬만 주식회사로 바꾸면서 지금의 기꼬만이 완성됩니다. 조선의 장독대가 며느리의 개인적 습관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여덟 가문이 단일 기업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반전은 21세기에 찾아왔습니다. 2023년 국제학술지에 실린 연구에서 바실러스 서브틸리스가 풍부하게 자란 한국 전통 된장이 완경기(갱년기) 모델 쥐의 포도당 대사, 골 대사, 기억 기능을 뚜렷하게 개선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24년에는 완경기 여성 56명을 대상으로 한 RCT(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에서 코지 방식의 상업용 장보다 자연 발효 한국 전통장이 완경 증상 완화에 더 효과적이었다는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RCT(무작위 대조 임상시험)란 참가자를 무작위로 나누어 특정 처치의 효과를 비교하는 임상 연구의 가장 높은 수준의 검증 방식입니다. 상품화에는 뒤처졌지만, 건강 기능성에서는 우리 장이 앞서 있다는 걸 과학이 뒤늦게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출처: 국립농업과학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간장 음식을 꼽으라면 간장게장과 봄나물 장아찌입니다. 두 음식의 공통점은 간장이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고 감칠맛만 더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 감칠맛의 정체가 수천 년 발효 기술이 만들어 낸 아미노산의 결정체라는 걸 이제야 제대로 실감합니다. 세계 간장 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아직 한국 브랜드는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하지만 자연 발효의 건강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는 지금, 판이 다시 달라질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자취 시절 반찬 없을 때 계란프라이 두 개에 간장 한 바퀴 돌려 밥을 비벼 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한 끼가 2천 년 발효 문명의 끝자락이었다는 생각을 그때는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절에서 사찰음식을 먹으면 조선간장 특유의 짜고 담백한 맛이 느껴지는데, 그때마다 이 맛이 우리가 먼저 만들었고 세상에 퍼뜨렸던 맛이라는 걸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장독을 붙잡고 정성이라 부른 것을 일본은 생산성으로 번역했지만, 그 정성의 가치가 과학으로 증명되는 시대가 마침내 오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 된장찌개 한 숟갈이 괜스레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kgpX8F_F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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